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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에 욕심 많던 파워열정 ENTJ 엄마가 퇴사를 했다.

미국에서/엄마됨

by 달린다달린 2024. 1. 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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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해보고 싶은 이야기.

 

나라는 사람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단어 중 하나가 '열정'

나는 무엇을 하든 이왕 하는거 잘해내고 싶어하고 관심이 많은 만큼 열정도 많다.

아닌건 포기를 빠르게 하는 대신 포기하지 않는 건 끝까지 하고, 꽤 잘 해낸다.

아직 긴 인생을 산 건 아니지만 나는 내 삶을 개척해나가는 그런 사람이고 새로운 도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번도 한량처럼 쉬어본적 없는 내 삶이다.

항상 바쁘고 항상 무언가를 하고 항상 나아간다.

 

학생때도 공부와 더불어 동아리 활동들도 활발하게 했었고, 대학교에 가서도 공부, 동아리 활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격증들도 틈틈이 땄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일을 열심히 했고 남들 다 가는 유학 나도 한 번 가보자 해서 일을 두 배로 늘려서 돈모아서 짧지만 유학도 갔다. 유학을 다녀와서는 사업도 시작했다. 사업도 부지런히 해서 빠르게 성장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적게 일하고 돈 많이 버는 그런 삶. 그러다가 사람의 인생은 참 모른다 싶었던게 내가 미국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미국에서 나의 배우자와 함께 살게 되었다. 사업도 다 정리하고 온 미국. 사람들이 다 미쳤다고 했다. 그 멋진 삶을 다 놓고 미국으로 간 나에게. 그치만 나는 자신있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하지만 언젠가 멋진 삶을 살고 있을 나란걸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부지런히 지냈다. 영어 점수도 따내고, 대학원을 가려고 포트폴리오 학원을 다니면서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대학원에 붙어서 대학원도 장학금 받으면서 열심히 다녔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고 꽤 큰 규모의 회사에 취업을 했다. 미국에 온 지 5년만에 안정적인 삶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취업을 하고 회사 출근한 그 주 주말.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임신이 먼저되면 난 일단은 취업을 하지 않고 내 인생에서 딱 한 번! 편하게 쉬면서 태교를 즐기고 싶었다. 

나도 아가와 나를 위해 한번쯤은 탱자탱자 놀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된 거.. 입사 일주일만에 그만두기도 좀 그렇고, 더군다나 작은 회사였음 몰라도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회사에 다니고 있었어서 이 곳에서 커리어를 좀 만들고 싶은 욕심에 나의 한량의  꿈은 바로 접었다.

근데.. 임신. 이거 정말 장난 아니다. 입덧이 있다면 더더욱.

진짜 너무너무 힘들어서 일을 때려치고 싶단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출산 직전까지 일을했다.

임신을 했어도 모성애 이런거 전혀 없었고 그냥 내가 버텨내면 커리어를 지킬 수 있고 육아휴직땐 주에서 주는 수당도 받을 수 있으니까 그 욕심들 때문에 버텨냈다.

출산을 하고 뉴저지주에서 주는 Maternity Leave가 이것저것 합치니까 6주+12주 해서 4개월 반 정도 나온다.

한국에 비하면 너무 짧다.

4개월 된 아가를 기관이나 시터에게 맡기고 내가 복귀를 할 수 있을까? 를 임신때부터 많이 고민했지만 답은 일단 해보자! 였다. 

출산 전에는 아가를 보내고 일할 마음이 80퍼센트였다. 출산 후에는 50퍼센트. 4개월이 다가왔을땐 40퍼센트.

나는 동생의 결혼식으로 인해 한국에 갔어야 했고 간 김에 남편 가족들도 만나러도 가는게 좋을 것 같아 회사에 육아휴직 끝나고 2개월 더 휴가를 원한다고 이야기 했다. 우리회사.. 레이오프가 많은 회사라서 안된다고 하거나 그냥 날 해고 할 줄 알았다. 어쩌면 약간 그러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의아하게도 승인이 났고 그렇게 나는 아기가 6개월 일 때 복직을 하게 됐다.

 

아기를 낳고 나는 정말 완전히 변했다.

내가 우선인 나는 과연 나에게도 모성애라는게 생길까? 싶었는데 아기를 보자마자 모성애 1000000% 장착완료!

내가 생각해도 너무 웃기지만 사실이다. 정말 나의 모든것은 나의 아기에게 초점이 먼저 맞춰져있다.

너무너무 소중해서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서 눈물이 줄줄 날 정도. (아마 행복해 미치겠어서 눈물이 나는건 호르몬 변화 때문이겠지만)

 

육아휴직동안 시터도 알아보고 데이케어도 알아봤는데 괜찮은 시터를 못만나기도 했고, 시터 한 명이서 다른 감시하는 눈 없이 아가를 돌보는 것 보다 차라리 데이케어에서 여러 선생님과 매니저가 아기를 함께 보는게 더 안전할 것 같았다. 좋은 시터는 못만났지만 다행히 집 가까이에 있는 데이케어는 꽤 괜찮아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래서 6개월 아기를 데이케어에 월-금 풀타임 8-6시 으로 보내고 나는 복직을 했다.

 

마지막 출근날

 

 

나는 주 3회 출근, 남편은 주 2회 출근 (둘 다 집에서 한시간거리). 둘이 번갈아가면서 재택하니까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 

데이케어에 보내고 출근을 해야하니까 아직 자고 있는 아기를 깨워야 할 때도 많았고,

아침에 내 뜻대로 움직여줄리 없는 아기랑 씨름해서 이것저것 다 챙겨서 데이케어에 보내고,

데이케어에 드랍하면 항상 슬퍼서 눈물이 나고,

울면서 출근해서도 계속 데이케어 어플 업데이트 됐나 확인하느라 일하기 힘들고,

데이케어에서 꼬질꼬질해져서 불쌍(?)한 모습으로 잠든 애기 사진을 보면 또 슬퍼서 눈물 글썽하고,

일이 많은 날엔 퇴근이 늦어서 집에 도착하면 아기가 이미 잠들어서 잠든아기 보면서 울고.

진짜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바쁘고, 마음이 너무너무 힘들다. 

재택이라해도 일은 해야하기 때문에 출근하는것과 매한가지. 그냥 아기가 무슨일 있을때 빠르게 갈 수 있다는 게 마음이 놓일뿐.

정말 우리 부부 대화 할 시간과 체력 하나도 없고, 둘이 팀플로 애기 보내고 데려오고 하느라 정신 없고, 둘 다 계속해서 슬픈 마음이 들고, 애기는 하루에 끽해야 한두시간 보는게 다다. 둘이 하는 대화라곤 이거 했니 저거 했니 이거 챙겼니 저거 챙겼니.

그래도 애기가 어느정도 크고 우리도 적응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둘 다 너무 지치고 힘들었지만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데이케어를 가니까 애기가 정말 바로 아프다.

다들 얘기해줘서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스리랑카와 한국을 왔다갔다해도 아픈적 없던 애기가 데이케어 다니자마자 감기에 걸렸다. 

애기가 아프니까 우리 전부 다 또 잠도 못자고 결국 데이케어에 못보내고 둘이서 재택하면서 여차저차 가정보육을 해야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행히 금방 나았다. 

그래서 다시 데이케어에 보내기 시작했는데 또 아프다. 

이번엔 더 심하게 아파서 콧물도 많이 나고 기침도 심하고, 기침이 너무 심해서 기침하다 토하기를 5일동안 했다. 잠은 당연히 못자고.

이번엔 2주 정도 아팠다. 나는 회사가 너무 빡세서 재택을 해도 가정보육하면서 절대 일을 할 수가 없다. 고도의 집중력과 스피드를 요하는 업무들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데이타임엔 아픈 아기를 돌보고 아기가 자는 저녁에 받은 업무들을 했다. 그래서 나는 잠을 전혀 잘 수가 없었다. 

42시간을 깨어있었던 나 자신에게 너무 놀랐다. 이때도 생각한건 내가 아프고 힘든건 참을만한데 아기가 아픈걸 보는게 정말 너무 힘들다는 생각...

 

이렇게 거의 한 달을 보낼 무렵. 

나랑 남편은 서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이건 사람사는게 아니다. 라고.

우리 남편은 나를 늘 멋진사람으로 봐주고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나의 일을 열심히 응원해주고 서포트 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더 열심히 일하고 그래서 더더욱 일을 관두지 않으려고 했던것도 있다.

그런데 이번엔 둘 다 이건 정말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둘이 진지하게 이야기하다가 결국 내가 퇴사를 하는게 좋겠다. 라는 결론이 났다. 

물론 이 결론은 한번에 난건 아니다. 우리 둘 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내 커리어도 중요하고, 내 연봉도 적지 않고, 이방인으로서 멋진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그게 참 좋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중요한 건 우리 애기. 그리고 우리 가족.

애기가 아프고, 우리 마음도 아프고, 부부가 대화할 시간도 없고. 가족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아기가 아픈모습을 볼때면 '내가 도대체 뭐 좋자고 이러고 있나' 라는 생각이 수백번.

처음엔 좋은 회사 놓친걸 후회할까봐 두려워서 회사를 붙잡고 있었는데.. 아기가 자라는걸 보는게, 그리고 아직 어린시기인데 엄마가 곁에서 잘 돌봐주는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자신있었듯, 그리고 여긴 미국인만큼! 일은 나중에도 잘 구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사실 이렇게 애기를 키우다보니 주 5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거.. 하기 싫어졌다.

아이랑,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추억을 쌓으려면 시간활용을 좀 더 유연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정하고 회사에 통보. 2주 뒤 퇴사.

회사.. 입사는 그렇게 힘들고 조마조마하더니 퇴사는 별거 아니더라.

아주 간단하게 퇴사 완료!

내가 아이돌보려고 퇴사한다고 하니까 회사의 엄마들이 모두 나에게 따로따로 와서는 잘한 선택이라고 속닥속닥 해주었다.

울 오피스에 미국인인 엄마 두 명을 제외한 모든 엄마들 특히 아시안, 인도인 동료들이 자기도 아기 어릴때 다 일 관두고 7-8년을 쉬다가 복직한거라고.. 몰랐던 사실이었는데 놀라웠다.

정말 거짓말 안하고 워킹맘인 그들 모두가 일 지금 안하더라도 나중에 복직 충분히 가능하고 아기들 정말 금방 자란다고 아기 크는거 보는게 정말 어느것보다 가치있는 일이라고 잘한 선택이라고 해주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의 나는 돈을 많이 벌고 회사승진도 팍팍하고 사회적 위치가 괜찮은 엄마로써 아이 서포트 착착 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더 멋지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아기를 낳아보니 아기는 정말 금방 자라고 내 아기는 아직 너무 어리다. 돈도 명예도 일단 아기 좀만 더 내 손으로 키우고 아이랑 추억 많이 만들고 다시 다져야지..

 

일을 하는것과 안하는거 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또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 다르니까.

내가 회사가 너무 빡센회사가 아니었다면, 혹은 회사가 가까웠다면, 아니면 집 근처에 부모님들이 계셨다면 융통성있게 요리조리 잘 맞춰가며 회사를 계속 다녔을수도 있다.

그리고 보통 엄마가 육아하다보면 아기에게서 받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은데 사회생활하면서 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면 아기에게도 더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다만 나의 경우는 회사가 너무 빡세고 융통성이 없는데 다행히 나는 아기에게서 스트레스보다 사랑을 더 많이 느껴서 아기랑 있는게 행복으로 다가와서 나의 선택은 나에게 맞는 선택이었다는거.

 

 

나의 육아일기 중 일부

 

 

퇴사하고 두 달 지난 지금,

퇴사를 0.000001도 후회하지 않는다. 

너무너무 잘한 선택이었고, 나는 지금 아기의 성장을 하나하나 보면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다.

덕분에 남편도 안정적인 마음으로 일을 하고, 나와 아기를 위해 오히려 일을 더 늘리기까지 했다.

남편과

'데이케어에 내일 보낼거 챙겼어?', '데이케어 오자마자 애기 씻기라니까.', '애기 오늘 픽업 몇시에 할 수 있어?'

이런 대화 대신에 

함께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오늘 울애기 자기주도이유식 시도했는데 당근 너무 잘먹더라.', '오늘 갑자기 배밀이해서 소파 밑에까지 기어갔어!' 

이런 대화들을 나눈다. 

이런게 행복이지.

대신 나도 언제까지나 마냥 애만 바라보고 살 생각은 없기 때문에 시간나는대로 내가 하고 싶은것과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찾아보고 그려보고 있다.

언젠가 또 나답게 무언가를 멋지게 하고 있을 날이 오겠지.

 

아, 그리고 애기 키우면서, 그리고 아기 키우는 친구들이랑 대화하면서 항상 하는 생각..

육아엔 정답이 없고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모두 훌륭하다는거.

난 내가 엄마가 된 게 너무 좋다. 더 멋진 사람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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